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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자동차 소식

폭스바겐 비틀과 관련된 역사적 스토리와 프랑스 시트로앵의 국민차 생산 과정

by 자동차차차 2022. 3. 6.

폭스바겐 비틀과 관련된 역사적 스토리와 프랑스 시트로앵의 국민차 생산 과정에 대해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폭스바겐 비틀과 관련된 역사적 스토리

히틀러의 지나친 야망으로 개발

헨리 포드는 본인의 차에 대한 자신의 이상과 경제적 이념, 정치적 이념을 적절하게 융합해낸 반면, 히틀러는 오로지 본인의 정치적 목적에만 집착을 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포르셰에게 독일의 국민차는 성인 두 명과 어린이 세명을 태우고도 시속 100km 속도를 내고 달릴 수 있어야 하며, 그 당시 소형 모터사이클 가격 수준인 100마르크 이하로 판매가 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이러한 히틀러의 요청은 당시의 경제적, 기술적인 상황으로는 매우 비현실적인 목표이지만 독일 국민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통해 본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독일 제국을 만들려고 했던 히틀러의 광기 어린 집착이었습니다. 이러한 히틀러의 광기에 가까운 이상주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독일 국민차를 개발하기 위해 작업에 동원이 되었습니다.

 

 

폭스바겐 비틀에 포함된 강한 정치색

폭스바겐의 비틀에 강한 정치색은 초기에 나왔던 슬로건인 Volkswagen-KdF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슬로건의 KdF는 Kraft durch Freude라는 말의 줄임말로 뜻은 기쁨을 통한 강인 함이라는 의미를 가졌으며 독일 노동조합이 외치던 구호였습니다. 폭스바겐의 비틀의 공식 명칭은 Volkswagen Type 1이었습니다. 의미는 국민차 1호라는 의미이며 이후에 엔진 배기량에 따라 Volkswagen 1200, 1300, 1500으로 이름이 지어지게 됩니다. 독일인들은 폭스바겐의 비틀을 딱정벌레라는 애칭으로 불렀기에 결과적으로 나중에 Beetle이라는 이름이 공식화 되게 됩니다. 

 

 

전쟁 이후 폭스바겐 비틀의 생산 과정

히틀러는 이 비틀의 비현실적 가격을 보완하기 위해 Volkswagen-KdF 적금 제도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한 주에 5마르크씩 적금을 할 경우 나중에 원하는 차를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합니다. 당시 독일의 노동자들 한 달 월급이 100마르크 정도였는데, 이러한 히틀러의 광고를 믿고 아직 양산조차 되지 않은 자동차를 위해 성실하게 적금을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그 누구도 차를 인수받지 못했으며 노동자들이 적금으로 낸 자금은 군비 자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폭스바겐의 비틀은 전쟁의 시기에는 일부 군수용으로 생산이 되었고 전쟁 이후에는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폭스바겐의 공장을 접수하게 된 영국군이 독일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 공장을 재가동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비틀 이 다시 생산되게 됩니다. 영국군이 철수를 한 뒤에는 생산량이 더욱 늘어 1955년에 100만 번째 차를 생산했으며 2003년 단종이 될 때까지 무려 총 2152만 대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폭스바겐 비틀의 놀라운 판매 기록

포드 모델 T가 18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1500만 대 정도 생산이 되었는데, 폭스바겐의 비틀은 1938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6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2100만 대가량이 생산되어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대수가 생산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폭스바겐 골프를 기초로 한 뉴비틀 모델이 지금도 판매가 되고 있으며, 비틀을 설계했던 포르셰 박사는 1948년에 포르셰 356에 비틀의 구조를 그대로 적용하여 포르셰 911 모델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시트로앵의 국민차 개발 목표

미쉐린의 시트로앵 인수

프랑스 시트로앵 2CV 역시 프랑스 국민차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미쉐린이 더 많은 타이어 판매 증가를 위해 시트로앵 자동차 기업을 인수하게 되는데, 대규모 시장조사를 거쳐 농부들을 위한 견고하지만 싸고 단순한 소형차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게 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책임자였던 피에르 불랑제는 개발하려고 하는 차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피에르 불랑제의 구제적인 개발목표

피에르 불랑제의 구체적인 목표는 두 농부가 50kg의 감자 한 포대와 포도주 작은 병 하나, 계란 한 소쿠리를 넣고 가되 계란을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비포장도로에서 시속 5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리터당 33km의 연비를 내야 한다는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시트로앵이 가지고 있었던 중형 세단 모델인 트락 숑 아방 가격의 3분의 1을 넘지 않아야 하고 이 조건이 충족 가능하다면 디자인은 상관이 없다는 단서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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